교수를 우습게 알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갓 입학한 후였다. 학원 선생님들의 깔끔한 강의 스타일에 익숙해있던 것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 공부는 많이 한 사람들 같은데 수업은 재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미디어 탓에 뭔가 기득권을 가진 집단으로 보여 괜스레 거리감도 느꼈다. 초중고 선생님들처럼 편하지도 가깝지도 않고. 대학 수업에 크게 흥미가 없었던 것도 한 몫 했다. 그게 오만임을 깨달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연히 한 수업을 접했다. 늘 질문과 대답, 격려와 용기의 말들이 가득했던 강의실이었다. 줄곧 겸손과 품위를 잃지
매년 이맘때 즈음이면 본지는 창간기념호를 준비한다. 어느덧 71주년이다. 축하 글과 그림으로 1면부터 채우고 신문사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기획면, 주제 하나를 잡아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특집면을 배치한다. ‘축사 – 선배 기자들과의 만남 – 시사 이슈’로 이어지는 창간기념호의 구성은 하나의 매뉴얼처럼 자리잡은 모양새다. 혹자는 그런 구성에 약간의 진부함을 느끼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늘 고정된 연사로부터 받는 글(대학언론으로서 역할을 다해달라!)은 우리의 책임을 곱씹게 하고, 선배들의 따끔한 충고와 격려(대학의 변화
처음 입학할 당시 새터에서 배운 응원문화는 충격적이었다. 온통 빨간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양 팔을 어깨에 걸고, 음악에 맞춰 소리를 고래 지르며 몸을 흔들어대는 모습이라니! 눈을 찌르는 땀을 연신 털어내며 누군가는 고된 동작에 표정을 찡그리고, 누군가는 그 모습이 즐겁다며 좌우의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풍경. 2002 월드컵을 생생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응원’이라는 이름으로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똘똘 뭉치는 모습에 놀라움과 낯섦, 신선함을 느꼈다. 입실렌티에서 운동장을 한가득 채운 ‘광적인’ 붉은 원들의 파도를 봤던 이라면,
‘지식인(知識人)’의 함의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서 늘 변해왔다. 심지어 그 정의조차도 급변하는 사회 맥락에서 특정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포괄적으로 이해하면 지식으로써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되거나, 때로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학문의 길에 침잠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의미로 해석하든 그들에게 거는 사회의 기대와 요구는 대체로 비슷하다. 매우 크고, 또 넓다. 그렇다면 ‘오늘날, 바로 여기’라는 시공간적 제한을 둬보자. 2018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지식인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이들이 바라보
한국 정치사에서 ‘단식’은 주요 투쟁수단이었다. 1983년 야당 대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주년 기념일부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그는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23일간 ‘곡기를 끊었’다. 외신을 통해 이 사건이 알려졌고, 결국 전두환 정권의 인권유린 실태를 전세계에 고발하는 효과를 거뒀다. 모든 단식 투쟁의 귀결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로부터 약 30년 뒤인 2016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임기가 1년 반 남은(예정대로라면)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을 막고자 ‘7일 단식’을 시도했다.